멀쩡히 잘 발송되던 메일이..
5월 19일(화) - 핫메일(Hotmail) 부터 해서 메일이 송신이 되지않았습니다.
5월 20일(수) - 몇몇 고객사에 메일이 발송이 중지됨
553 [Sniper]Blocked - see http://cbl.abuseat.org/lookup.cgi?ip=xxx.xxx.xxx.xxx
-> 조치사항
1) 리버스도메인 등록 - KT 도메인 관리팀에 신청 (제대로 전파되려면 약 3시간소요)
2) http://cbl.abuseat.org 걸러진 IP에 대해서 스팸 해제 요청 ㅠㅠ (다음에도 걸리면 큰일인데..)
Just let me say How much I love you
Let me speak of Your mercy and grace
Just let me live In the shadow of your beauty
Let me see You face to face
And the earth will shake as Your word goes forth
And the heavens can tremble and fall
But let me say How much I love You
O my Savior, my Lord and friend
Just let me hear Your finest whispers
And You gently call my name
And let me see Your power and Your glory
Let me feel Your Spirit's flame
Let me find You in the desert
'Til this sand is holy ground
And I am found completely surrendered
To You, my Lord and friend
So let me say How much I love you
With all my heart I long for You
For I am caught in this passion of knowing
Ths endless love I've found in You
And the depth of grace, the forgiveness found
To be called a child of God
Just makes me say How much I love You
O my Savior, my Lord and friend
Just let me say How much I love you...
But let me say How much I love You...
Just makes me say How much I love You...
Just let me say
(주를 향한 나의 사랑을)
주를 향한 나의 사랑을 주께 고백하게 하소서.
아름다운 주의 그늘아래 살며 주를 보게 하소서.
주님의 말씀 선포 될 때에
땅과 하늘 진동하리니 나의 사랑 고백하리라 나의 주님 나의 친구,
부드러운 주의 속삭임 나의 이름을 부르시네
주의 능력 주의 영광을 보이사 성령을 부으소서,
메마른 곳 거룩해지도록
내가 주를 찾게 하소서, 내 모든 것 주께 드리리 나의 주님 나의 친구,
온맘으로 주를 바라며 나의 사랑 고백하리라
나를 향한 주님의 그 크신 사랑 간절히 알기 원해,
주의 은혜로 용서하시고
나를 자녀 삼아 주셨네 나의 사랑 고백하리라 나의 주님 나의 친구,
신데렐라증후군(cindereiia Syndrorm) 억압된 애도와 불안이 뒤얽혀 여성의 판의성과 의욕을 한껏 발휘하지 못하게 하는 일종의 미개발 상태로 묶어주는 심리상태"여성은 어릴때부터신데렐라가 되기를 꿈꾸며 이루어지지 않은 꿈과 현실사이에서 갈등하는 심리를 갖는다 이러한 여성의 심리상태가 깊어지면 "신데렐라 콤플렉스"라는 증상으로 나타나게된다.
(예레미야 8:18 ~ 22)
18 슬프다 나의 근심이여 어떻게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 내 마음이 병들었도다
19 딸 내 백성의 심히 먼 땅에서 부르짖는 소리로다 여호와께서 시온에 계시지 아니한가, 그의 왕이 그 가운데 계시지 아니한가 그들이 어찌하여 그 조각한 신상과 이방의 헛된 것들로 나를 격노하게 하였는고 하시니
20 추수할 때가 지나고 여름이 다하였으나 우리는 구원을 얻지 못한다 하는도다
21 딸 내 백성이 상하였으므로 나도 상하여 슬퍼하며 놀라움에 잡혔도다
22 길르앗에는 유향이 있지 아니한가 그 곳에는 의사가 있지 아니한가 딸 내 백성이 치료를 받지 못함은 어찌 됨인고
지금 우리는 개인, 가정, 사회, 교회, 나라, 민족, 세계가 여러 문제의 어려움에 봉착해 있습니다. 안으로는 사회적 혼란은 물론 경제적 어려움, 밖으로는 세계경제의 파동과 이방종교와 이단의 득세 등 심히 어렵습니다. 우리 성도들과 교회에 주어진 숙제 또한 큽니다. 우리 앞에 당면한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그것을 오늘 본문이 잘 가르쳐 줍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당시 멸망한 이스라엘을 향해 탄식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전하면서 22절에 이런 말씀을 합니다. "길르앗에는 유향이 있지 아니한가? 그 곳에는 의사가 있지 아니한가? 딸, 내 백성이 치료를 받지 못함은 어찜인고?" 즉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문제를 해결할 모든 방법을 다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신비한 방법은 무엇일까요?
1. 기도입니다.
22절에 길르앗의 유향이 나옵니다. 이 유향은 기도를 상집합니다. 기도는 '신령한 유향'입니다. 출 30:34~38 성막에서 쓰는 향료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계 3:8에 "향이 가득한 금대접을 가졌으니 이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고 햇습니다. 계 8:3에 "제단 곁에 서서 금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들과 합하여 보좌 앞 금단에 드리고자 함이라"고 했습니다.
기도가 왜 향일까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왜 기뻐하실까요?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우리가 하나님의 큰 복을 받기 때문입니다.
기도생활을 잘하면 하늘의 문이 열립니다. 기도를 잘하면 우리 영혼이 살고, 기도를 잘하면 하나님께서 만나주시고, 붙들어 주십니다. 이 기도의 유향은 길르앗의 유향처럼 너무나 유명해서 해결하지 못할 문제가 없습니다.
사업을 하던 사람이 부도가 났습니다. 빚을 갚고 나니 수중에 있는 돈은 500만원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는 마지막 남은 돈으로 필리핀의 파나이 섬에 교회 하나를 지어 봉헌했습니다. 돈이 없어서 망고나무 아래서 예배하던 파나이 사람들은 그 교회 이름을 '부도교회'라고 짓고, 감사해서 날마다 돈을 보낸 성도를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부도났던 그 성도는 다시 사업이 번창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기도처럼 신기한 것이 없습니다. 아무리 마음의 상처가 깊어도 기도하면 그 상처가 낫습니다. 아무리 불가능한 육신의 질고가 있어도 기도하는 자에게 치료의 역사가 있습니다. 기도를 성실히 잘하면 마음과 신체가 정화되기 시작합니다. 기도하면 환경이 변하고 역사가 일어납니다.
기도는 정말 신기한 길르앗의 유향입니다. 기도는 인생을 고치고, 영혼을 고치고, 세상을 고칩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하나님이 주신 하늘의 길르앗의 유향입니다.
2. 말씀입니다.
22절 말씀의 '치료하는 유능한 의사'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합니다. '말씀'은 '의사'입니다. 시 19:7에 "여호와의 말씀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라고 하셨습니다. 요 6:68에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라고 하였습니다.
출 15:26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니라."
마 9:12~13에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유향이 아무리 좋아도 그것을 사용하는 기술이 없다면 소용이 없습니다. 기도 역시 아무리 좋아도 말씀의 빛을 받아서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말씀을 떠나면 응답이 없습니다. 말씀 없는 기도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더 깊이 들어가지 못합니다. 더 풍성하지 못합니다.
길르앗의 유향과 의사와 같은 기도와 말씀만 있다면 은혜 받지 못할 수 없고, 해결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말씀에 서서 믿고 회개하며 드리는 그 기도를 하나님께서 외면할 리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신령한 길르앗의 유향과 의사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십시다. 주님께서도 말씀과 기도의 무기를 사용하였습니다. 우리들도 더 이상 낙심치 말고 우리에게 주신 말씀과 기도의 신비한 무기를 사용할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영육 간에 행복하고 모든 문제들이 해결되며,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멘.
샤브미 (뷔페식, 정통 샤브샤브) http://www.shabumi.com
- 가족 회식으로 뷔페식 샤브샤브 추천함 (상견례로 가실분은.. 정통 샤브샤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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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입채한상 (http://www.suwoncity.net/114/bbs/board.php?bo_table=02_09&wr_id=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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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뉴판 보면 절대 먹지 말고 뛰쳐나갈지도 모르는 여자친구.. -_- 그래도 나름 멋져보이기 위해 데리고 간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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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먹는동안 여자친구랑 난 해맑은 미소로 열심히 먹은 곳.. 우리가 밥 먹는동안 뒤쪽 룸에서는 한창 상견례가 있는듯..
- 여자친구는 살짝 고개 내밀면서까지 봤다는..
마가복음 16:1~11
1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2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3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더니
4 눈을 들어본즉 벌써 돌이 굴려져 있는데 그 돌이 심히 크더라
5 무덤에 들어가서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라매
6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7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8 여자들이 몹시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
9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10 마리아가 가서 예수와 함께 하던 사람들이 슬퍼하며 울고 있는 중에 이 일을 알리매
11 그들은 예수께서 살아나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
주님이 무덤 속에서 보내신 안식일은 마지막 안식일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동시에 율법 종교의 가치관이 끝나는 날이며, 죽음의 세력이 지배하는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새날이 밝아 왔습니다.
1. 부활의 새 아침(1~5절)
갈릴리에서 온 여러 여자들이 안식 후 첫날 향품을 가지고 예수의 무덤을 찾아왔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보러 간 것이 아니라 그 시체를 오래 보존하기 위하여 향을 바르려고 찾아온 것입니다. 무덤에 도착했을 때에 그녀들은 예기치 못한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그녀들이 걱정했던 무덤 문이 이미 열려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무덤안에는 이미 예수님의 시신이 없었습니다. 무덤 안에서 발견한 것은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같이 흰 천사였습니다(마 28:2, 3). 의(세마포) 뿐이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예사랑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예사람을 무덤 속에 장사지내야 합니다.
또한, 예수님에 대한 관심을 가질 때, 뜻밖의 놀라운 일을 만나게 됨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마음만 먹어도 축복을 받습니다. 하는 시늉만 해도 축복을 받습니다. 거둘어주기만 해도 복을 받습니다.
2. 천사가 전해준 부활의 메시지(6~7절)
주님께서 부활하신 것이 틀림없음을 확인시켜준 천사는 이제 그녀들에게 메시지를 전합니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는지라"(6~7절).
주님께선 그의 대적자들과 대중들에게 부활의 소식을 전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메시지는 오직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믿음과 순종함으로 따르는 제자들만이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활의 메시지를 힘입어 약함에서 강함으로, 슬픔에서 기쁨으로, 허무함에서 희망으로 변화되는 능력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천사가 전해준 메시지는 '갈릴리로 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고난당하시기 전부터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후에 갈릴리에서 만날 것을 누누이 말씀해 주셨습니다(마 26:32, 막 14:28). 이제 제자들은 그 말씀을 기억하고 갈릴리로 가야 합니다. 갈릴리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뵙는 곳입니다.
3. 부활의 첫 목격자(9~11절)
본문 말씀은, 요 20:11~18과 같이 부활의 첫 목격자가 마리아라고 합니다. 특별히 본문에서는 그녀에 대해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 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라고 자세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어떤 자에게 나타나십니까?
먼저,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부활의 주님이 나타나십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어떠한 사람입니까? 마가가 소개한 대로 그녀는 하나도 아닌 일곱 귀신에게 사로잡혀 고통을 당했던 사람입니다. 이러한 그녀를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고 새사람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때문에 그녀는 예수님에 대한 고마움 때문에 예수님 곁을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고통을 받으실 때도, 무덤에 장사되어 주검으로 변했을 때도, 예수님을 향한 그녀의 사랑은 변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찾아가지 않는 새벽에 무덤을 찾아갔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으로 그녀는 최대의 사건인 부활을 처음 목격하게 되는 은총을 입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사랑하는 자에게 모습을 나타내십니다.
둘째로, 주님을 향한 열정이 있는 자에게 부활이 주님이 나타나십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고통을 당할 때 제자들은 겁이 나서 다 도망갔지만 마리아는 끝까지 주님을 지켜보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무덤에 장사되었을 때 제자들은 흩어져 실망 중에 울고 있었지만, 마리아는 이른 새벽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가는 열성을 보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안일한 신앙생활을 하고자 하는 자는 주님을 만나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성경은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니라"(렘 29:13)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자신의 죄를 깨닫고 죄 문제의 해결과 생명의 구원을 위하여 갈급한 심정으로 주님을 찾는 열정을 의미합니다.
이제 우리는 막달라 마리아와 같이 예수님을 만나는 은총을 얻기 위해서 주님을 사랑하되 열정적으로 사랑합시다. 주님은 '나를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며, 나를 사랑하는 자가 나의 사랑을 입을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아멘.
(고린도전서 11:23~29)
23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24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5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26 너희가 이 1)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헬, 떡덩이
27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1)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 헬, 떡덩이
28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1)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헬, 떡덩이
29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2)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성찬은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기념하는 예식입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날 밤 유월절 만찬에서 성찬예식을 서도들이 지켜 행하여야 할 영원한 규례로 주셨습니다. 다함께 떡을 떼고 포도즙을 마심으로 죄인들을 위해 내어주신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생각하며 대속적인 죽음을 기념하게 하신 것입니다. (눅 22:17~20).
본문에서 바울 사도는 이러한 성찬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고린도 교인들의 오류를 지적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중심으로 성찬의 참 의미와 성찬에 임하는 올바른 자세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애찬과 성찬
초대교회 당시의 성만찬은 오늘날의 성찬예식과는 달리 일종의 애찬식의 형태로 진행되었습니다. 주일 저녁에 모일 때마다 각자 음식을 준비해 와서 공동식사를 하고, 마지막에 떡을 떼고 포도주를 마심으로써 주의 만찬을 기념했습니다(벧후 2:13, 유1:12). 공동으로 나누는 식사와 성찬의 전례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되새기고, 성도들 간의 사랑의 교제를 나누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를 향한 바울의 책망은 현대 교인들에게도 매우 큰 의미를 시사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구속의 은혜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없는 성찬은 단순한 형식일 뿐 주님의 뜻에 합당한 성찬이 될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2. 성찬의 참 의미(23~26절)
성찬 예식은 주님께서 직접 제정하신 예식입니다(마 26:26~28, 막 14:22~24, 눅 22:19~20). 주님께서 이 예식을 제정하시고 행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이를 행하여야 합니다. 이 의식은 어떠한 의식보다도 존중되고 지켜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예식은 예수님의 권위로 집행되어야 합니다.
성찬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분문 24~25절에 나타난 바와 같이 떡과 잔은 예수님의 살과 피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몸과 피를 희생시킴으로써 믿는 모든 자들과 새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그 언약은 생명을 구하는 유일한 영생의 길입니다.(요 3:16, 롬 5:9~11, 8:35~39, 갈 2:20).
성찬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은혜를 깊이 새기고 감사는 예식입니다. 또한 성찬에 참예하는 자는 복음전파를 다짐해야 합니다. 성도들은 성찬에 참여할 때마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죽으셨다는 사실을 기억 할 뿐 아니라 주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전파해야 합니다(26절). 그러므로 전도에 소홀히 하던 성도들도 이 성찬에 참여함으로 전도에 대하여 새로운 각오를 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그날까지 모든 족속에게로 가서 이 십자가의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마 28:19~20).
3. 성찬에 참여하는 자세(30~34절)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27~32절). 성찬을 받기 전에 하나님과 사람앞에서 죄지은 일이 없는지 살펴본 후에 그 죄들을 주님께 고백하고 용서를 받아야 합니다. 그런 후에야 비로소 성찬에 참예 할 수 있습니다. 죄를 고백하지 않은 상태에서 성찬을 받으면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며(29절),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27절). 주님께서는 우리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토록 무서운 죄를 당연히 살펴야 합니다.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33~34절). 온 교회와 성도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지체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한 형제오 자매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마땅히 형제자매를 돌보고 교제를 나누어야 합니다.
준비되지 않은 마음과 행동으로 성찬에 임하였을 때 그 결과는 참으로 심각한 것입니다(27~32절). 생명의 단축과 육신의 질병으로 고생하는 징계라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준비된 마음과 자세로 성찬에 임하게 된다면, 주님과 연합되며 신령한 은혜를 받게 되고, 더욱더 신앙이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은혜로운 성찬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주님의 구속의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골로새서 2:11~12
11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12 너희가 1)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1.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와 합하는 것
1) 세례는 완전한 단절입니다. 이 단절은 죽음처럼 종결적인 것입니다. 바울은 세례 의식을 예시로 사용하여 이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성도의 세례와 그리스도의 죽음을 같은 의미로 보고 있습니다. 바울은 성도의 세례와 그리스도의 죽음을 같은 의미로 보고 있습니다.
세례는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우리 죄가 씻겼다는 상징인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12절)고 말합니다. 이것은 세례의 의미가 그리스도의 구속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2) '세례'는 매장과 부활을 상징합니다. 우리들이 '흑암의 권세에서' 풀려나와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진 극적인 변화를 여실히 드러내 줍니다. (골 1:13)
분명히 이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키게 하는 것은 세례가 아닙니다. 세례는 이 변화를 상징해 줄 뿐이며, 실제의 변화는 그리스도안에서 일어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들이 죽고 또 살아나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발생되는 사건입니다. 새 생명은 세례의 물속에서 태어나지 않고,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와 연합됨으로써 탄생됩니다. 생명은 믿음 자체에 의해서 우리들에게 주어지지 않고 '그리스도에 의해서' 주어집니다. 믿음은 신자를 그리스도와 연합시키는 일을 합니다.
2. 세례는 그리스도로 옷 입는 것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갈 3:27) 바울 사도는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주시는 은혜의 선물인 믿음을 받고 변화된 자를 '그리스도로 옷 입은 사람'이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화 된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로 옷 입은 사람은 외적인 모양과 내적인 심성이 온전히 새로워진 사람이며, 그리스도와 더불어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광과 반열에 서게 된 사람입니다.
온전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친아들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그를 닮아가는 삶을 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로 옷 입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 그리스도와 연합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그가 주신 모든 말씀을 상고하며 그대로 지켜나감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의 의식에 참여한 자도 그리스도와 연합하지 않으면 거듭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말씀을 준행하며 그리스도의 삶과 일치되는 생활을 하기 위해 애쓰는 자만이 그의 안에 내주하시며 항상 동행하시는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로서 주앞에 합당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3. 세례는 구원의 표
세례는 구원의 표징과 약속이 됩니다. "물은 예수그리스도의 부활 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벧전 3:21). 베드로는 세례를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는 방편이라고 말하지 아니하고 구원의 표라고 말합니다. 인간이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 입니다. 구원은 율법이나 세례, 또는 다른 의식이나 요식 행위를 통해서 얻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런즉 세례는 하나의 상징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례에 상징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즉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고 순종하겠다는 의미에서 받는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이미 구원이 보장되어 있는 것입니다. 세례가 인간 입장에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다는 결단의 표이지만, 하나님 편에서는 '나의 백성' 이라는 인침이요 증ㅍ인 것입니다. 베드로는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세례가 구원의 표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물은 육신에 묻은 더러운 것을 제할 수는 있지만 더러운 죄악을 깨끗케 하지는 못합니다. 따라서 세례는 정결함을 나타내는 상징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세례가 비록 죄악을 깨끗케 씻어낼 수는 없다 할지라도 양심을 깨끗케 하여 죄인이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즉 세례는 우리가 예전에 죄악 된 옛 생활에서 이미 죽었음을 상기시켜 줌으로써 자신을 계속 살피면서 거룩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아멘.
오늘은 고객사 서버에서 갑자기 프로그램이 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래서 재부팅을 하라고 하였다.
(암.. 당연히 고객이 서버에 무언가를 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왠걸.. 재부팅해도 않된다네..
우리 프로그램은 인터넷정보서비스(IIS) 80port를 이용한다.
(고객이 바꿀수 있으나 편안한(?)관리를 위해.. 80port이용 - 위험부담은 당연히 고객몫이 되겠지만..)
우선 서버를 봤는데, http(80)포트가 계속 open이 되어있는데.. 이게 도대체 뭔지..
netstat -nao 를 이용 찾았다.
-n 주소 및 포트 번호를 숫자 형식으로 표시합니다.
-a 모든 연결 및 수신 대기 포트를 표시합니다.
-o 각 연결의 소유자 프로세스 ID를 표시합니다.
-a 모든 연결 및 수신 대기 포트를 표시합니다.
-b 각 연결 또는 수신 대기 포트를 만드는 데 관련된 실행 프로그램을
표시합니다. 잘 알려진 실행 프로그램에서 여러 독립 구성 요소를
호스팅하는 경우에는 연결 또는 수신 대기 포트를 만드는 데
관련된 구성 요소의 시퀀스가 표시됩니다. 이런 경우에는
실행 프로그램 이름이 아래쪽 대괄호 안에 표시되어 있고 위에는
TCP/IP에 도달할 때까지 호출된 구성 요소가 표시되어 있습니다.
이 옵션은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으며 사용 권한이 없으면
실패합니다.
-e 이더넷 통계를 표시합니다. 이 옵션은 -s 옵션과 같이 사용될
수 있습니다.
-n 주소 및 포트 번호를 숫자 형식으로 표시합니다.
-o 각 연결의 소유자 프로세스 ID를 표시합니다.
-p 프로토콜 지정한 프로토콜에 해당되는 연결을 표시합니다. 프로토콜은
TCP, UDP, TCPv6 또는 UDPv6 중 하나입니다. -s 옵션과 함께
사용하여 프로토콜별 통계를 표시할 경우 프로토콜은 IP, IPv6,
ICMP, ICMPv6, TCP, TCPv6, UDP 또는 UDPv6 중 하나입니다.
-r 라우팅 테이블을 표시합니다.
-s 프로토콜별로 통계를 표시합니다. 기본값으로 IP, IPv6, ICMP,
ICMPv6, TCP, TCPv6, UDP 및 UDPv6에 관한 통계를 표시합니다.
-p 옵션을 함께 사용하면 기본값의 일부 집합에 대한 통계만
표시할 수 있습니다.
-v -b 옵션과 함께 사용하면 모든 실행 프로그램에 대한 연결
또는 수신 대기 포트를 만드는 데 관련된 구성 요소의 시퀀스를
표시합니다.
시간 다음 화면으로 이동하기 전에 지정한 시간 동안 선택한 통계를
다시 표시합니다. 통계 표시를 중단하려면 CTRL+C를 누르십시오.
지정하지 않으면 현재 구성 정보를 한 번 표시합니다.
위에서 찾은 프로세스ID를 작업관리자(taskmgr)에세 확인하여 그 서비스명을 인터넷으로 검색..
찾아보니.. 80포트를 이용하는 서비스는 요놈!
nmnsrvc (NetMeeting Remote Desktop Sharing)
경로: C:\WINDOWS\System32\mnmsrvc.exe
설명: 허용된 사람이 회사 인트라넷을 통해 NetMeeting을 사용하여 이 컴퓨터를 원격으로 액세스할 수 있게 합니다. 이 서비스가 중지되면, 바탕 화면 원격 공유를 사용할 수 없게 됩니다. 이 서비스를 사용 안함으로 설정하면, 이 서비스에 의존하는 다른 서비스를 시작할 수 없게 됩니다.
고객사에는 위 서비스를 있는지,
1) 확인여부(사용하지 않는다면 그냥 사용중지로 변경), 사용중이라면 포트를 변경하여 이용하길 권유
2) SmallBusinessServer 군의 제품일 경우, 윈도우 실행시 사용하는 서비스가 워낙 많으니 사용않하는 필수 서비스 빼고 중지 권유
그래도, 쉽게 나와서 참 다행이다.. 하지만 가끔 발생하는 일들이라.. 오늘은 헤맸다.. 아휴~ 미쳐..
4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5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네 자손을 동쪽에서부터 오게 하며 서쪽에서부터 너를 모을 것이며
6 내가 북쪽에게 이르기를 내놓으라 남쪽에게 이르기를 가두어 두지 말라 내 아들들을 먼 곳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 끝에서 오게 하며
7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현대는 컴퓨터가 신입니다. 사람들은 기계의 노예가 되고, 컴퓨터의 노예가 되어 삽니다. 사람들은 가장 자유로운 세대에 사는 것 같지만 기계에 종살이하며 삽니다. 해방된 것 같지만 기계, 기술, 정보 등의 노예로 살아갑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참 자유가 없이는 누구나 노예의 사람을 삽니다.
우리 민족은 과거 일제 강점기 때 독림을 위하여 3.1 운동을 일으켜습니다. 올 해로 3.1절 90주년이 되었습니다. 자유는 최고의 행복이며 최대의 영광입니다. 3.1절을 맞이하여 다시 자유의 참 의미를 살피고 자유를 얻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1. 자유를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본문에는 '내가'라는 말이 여섯 번 나옵니다. 이 말씀은 자유의 주체가 하나님이신 것을 확인시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자유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자유를 주셔야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헬무트 틸리케는 "역사의 축은 하나님이 가지고 계시다"고 하여씁니다. 하나님은 모든 역사를 주관하고 계시는 주인입니다. 눅 4:18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설명합니다.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윈스터 처칠은 "인생의 처음 25년 동안 나는 자유를 갈구했다. 그 다음 25년 동안 나는 질서를 추구했다. 그 다음 25년 동안 나는 질서가 곧 자유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고 그 질서 안에서 참 자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질서를 알고 자유를 압니다. 육신의 자유를 버릴 때 하나님의 큰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내 영혼이 자유 할 때만이 영원한 자유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2. 자유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자유를 주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보배롭고, 존귀하게' (4절)라는 말씀은 사랑을 묘사하는 말입니다. 우리 민족은 하나님의 사랑받는 민족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민족의 살 길은 주변국이나 강대국들의 도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받는 민족이 되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지난날의 해방의 역사를 보심시오. 일본의 ㄱ만이 극도에 달해 무모한 진주만 공격을 감행했습니다. 이 일로 미국을 태평양 전쟁에 끌어들였습니다. 미국은 1945년 8월 6일과 9일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탄을 투하하였고 일본은 무조건 항복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해방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물론 독립투사들이나, 국제적 도움을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 필요하고 중요한 역할을 하였지만 결정적 계기는 하나님이 만드신 것입니다.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의 품안에서 살 때에 비로소 해방이 있고, 자유가 있고, 평화가 있습니다. 세상의 자유를 버릴 때 비로소 진정한 자유가 있습니다.
3. 자유는 하나님의 지으심 때문입니다.
7절 말씀에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내가 만들었느니라."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창조한 자'라고 합니다. '지었다'라고 합니다. 그리고 '만들었다'고 합니다. 같은 의미의 세 단어가 반복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 조성, 완성의 세 단계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만드시 피조물 가운데 손으로 빚은 존재가 사람입니다. 다른 피조물들은 말씀으로 "있으라"고 하셨지만 사람은 정성껏 손으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과 정성이 담긴 피조물이 사람입니다. 그 중에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지으심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사랑을 받습니다. 고전 7:22에는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자요"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사람은 하나님이 부르신 자유의 사람입니다.
제임스 에이지는 인간을 '날개가 땅에 못 박힌 성난 청사'로 묘사하였습니다. 날개가 땅에 못 박히면 자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우리를 땅에 박힌 속박의 못에서 빼내고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우리를 자유케 하시는 은총입니다.
갈 5:1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시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자유함 가운데서 자유를 얻고,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고, 일치하고 단결하여 이제는 완전한 국토, 국론의 통일로 나아가는 우리 민족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