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다니엘(벨드사살)의 세 친구 하나냐(사드락), 미사엘(메삭), 아사랴(아벳느고)는 풀무불(용광로, 불가마)에 던져지는 시험을 당했습니다. 목숨이 경각에 달렸는데도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은 망령되게도 '두라' 평지에 자기 신상을 세워놓고 그 신상에 만천하 백성은 모두 절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 신상에게 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왕과 타협하지 않고 목숨을 걸고 신앙의 절개를 지켰습니다. 그들은 극렬히 타는 풀무불 속에서 승리했습니다. 우리들도 회유와 위협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신앙인이 됩시다.
1. 타협하지 않는 신앙.
16절 말씀에서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그 어떤 논쟁이 타협도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다면 하나님 앞에 물어볼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를 '포스트모던이즘'이라고 합니다. 다양한 가치들이 존재하는데 그 중에 어느 하나를 절대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절대자 하나님을 배제하는 악한 주장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절대적 신앙을 버리고 상황에 따라 타협하는 믿음을 갖기 쉽습니다. 신앙은 타협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심지 경고한 자가 됩시다. 사 26:3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시키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절대로 양보할 수 없고, 타협할 수 없는 신앙의 지조가 있었습니다. 풀무불 속에 던져진다고 해도, 아니 평일보다 7배나 뜨거운 풀무불이라 할지라도 포기할 수 없는 신앙의 절개가 있었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것만은 안돼!"라는 신앙의 지조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신앙인을 환난에서 구원하십니다.
2. 말과 행동으로 하나님을 시인하는 신앙.
다니엘의 세 친구는 하나님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왕과 모든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을 시인했습니다. 17절에 보면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고 했스빈다. 불 속에 던진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건져주실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약속의 말씀에 서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내 귀에 들리는 음성이 없어도, 성경 실력이 부족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시121편에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화에게서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고 했습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와 같이 말과 행동으로 하나님을 시인할 때 시험은 물러갑니다. 하나님이 책임져 주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일으켜 세워주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회복시켜주심을 믿어야 합니다.
3.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신앙.
세 친구의 믿음에서 가장 돋보이는 부분이 18절 입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줄을 아옵소서." 설령 하나님께서 풀무 불에서 건져 내시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만 섬기고 금 신상에 절하지 않겠다는 신앙고백입니다. 이게 진짜 믿음입니다. 이런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으로 기뻐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영생의 백성이 된 것만 해도 이미 큰 복을 받은 것입니다. 하박국처럼 구원의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합 3:17, 18)
단 3:25절을 보면 네 사람이 불 가운데 있는데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드로가 같더라'고 했습니다. 여기 신들의 아들 같은 분은 바로 '구약에 나타나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주님이 그곳에 오셔서 그들과 함께하시며 보호해 주신것입니다. 그들의 하나님이 함께하셨기에 평소보다 7배나 뜨거운 풀무 불에서도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이 놀라운 광경을 지켜본 느부갓네살 왕은 하나님께 회개하며, 찬송하며, 영광을 돌렸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의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알곡입니까? 쭉정이 입니까? 어떤 일이 있어도 죄악과 타협하지 마십시다. 말과 행동으로 하나님을 시인하십시다. 그리고 그리 아니하실 지라도의 믿음을 가집시다. 그래서 불같은 시험을 다 이기고 보는 모든 이로하여금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는 세 친구와 같은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멘.
말씀 : 2009년 9월 6일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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