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가정(골로래서 3:18~21)


  바울은 본문에서 그리스도인들의 가정의 관계를 잘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며, 자녀는 부모에게 순종하고, 부모는 자녀를 격노케 하지 않으면 그 가정은 행복한 가정이 됩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행복한 가정을 이룹시다.
  가정은 사람을 사람 되게 만드는 공장입니다. 사회와의 관계를 배우는 곳이 가정입니다. 가정에서는 부모, 부부, 자녀 세가지 체계가 있습니다. 이 세가지 체계가 잘 조화를 이룰 때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세가지 체계중에서 그 중심은 부부입니다. 부부가 하나되어 부모를 공경해야 하고, 또한 부부가 하나 되어 자녀를 교육시켜야 합니다. 부부가 하나 되지 못한 효는 온전한 효가 될 수 없습니다. 부부유별, 부자유친이 부부유친, 부자유별로 바뀌어야 합니다. 부부가 친밀해야 가정이 행복해 집니다.
  유교의 효 사상은 부모중심의 효 사상이며, 기독교의 효 사상은 부부중심의 효 사상입니다. 하나님은 부부가 하나 되어 효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창2:24 말씀을 보면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부부가 하나 되어 자발적으로 효도해야 합니다. 바로 이런 부모님의 효를 보면서 자라는 자녀들이 진정한 부부의 사랑과 효도를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부모는 아이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아야 합니다. 아버지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선물은 어머니를 사랑하는 것이며, 반대로 어머니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선물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1. 아내들은 남편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아내들은 머리되는 남편에게 복종해야 합니다(18절). 바울은 그 이유를 크게 두 가지 이유로 설명합니다. 첫째는 남자가 먼저 창조되고 여자가 그 후에 창조되었다고 하는 창조의 질서 때문이며(딤전 2:13), 둘째는 남자의 머리 되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 복종하듯, 남편이 아내의 머리가 된다는 신성의 질서(고전11:3) 때문입니다. 여기서의 복종은 열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단순히 여자가 아닌 남자가 가정의 머리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2. 남편들은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남편들은 그리스도께서 몸 된 교회를 사랑하셨듯이 아내를 사랑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엡5:28~29).
  이것은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것 보다 더 포괄적이고 큰 임무에 속하는 일입니다. 즉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의 몸을 내어주셨듯이 남편들도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의 몸과 같이 사랑하고 돌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아내는 남편의 소유물도, 수하에 있는 사람도 아님을 남편들은 명심해야 합니다. '아내'는 '내 안에 있는 태양'이란 뜻입니다.

  3. 자녀는 부모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자녀들은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해야 합니다(20절). 구약성경은 자녀가 부모에 대해 불순종하는 것을 하나님께 대한 반역으로 규정하고 엄한 징벌을 명하고 있습니다(출21:17, 레20:9). 반면에 부모에게 순종한는 자는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20ㅣ12)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요셉과 그의 모친 마리에게 순종하심으로써(눅2:51) 친히 본을 보이셨습니다.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은 '주 안에게 기쁘게 하는 것' 이라고 본문은 말합니다. 이것은 자녀의 순종이 하나님께서 만드신 가정의 질서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다른 곳에서 자녀들이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이 '옳으니라.'(엡 6:1)고 했습니다.

  4. 부모는 자녀를 노엽게 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 21절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격노케 말지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아비들아'라고 한 것은 어머니들까지 포함하는 의미를 갖습니다(잠1:8). 그와 같이 부모들은 자녀들을 격노케 하거나 불합리한 요구를 함으로써 자녀들을 괴롭게 해서는 안 됩니다(엡6:4). 자녀들을 격노케 하면 그들은 낙심하게 되고 결국에는 잘못된 성장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들은 자녀들을 무조건 책망함으로써 격노케 하지 말고 '사랑의 훈련' (히12:7)과 함께 '주의 교양오가 훈계'(엡6:4)로 양육해야 할 것입니다. 아멘.

말씀일 : 2009년 5월 17일 주일예배시간
세례의 의미 (골로새서 2:11~12)


  1.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와 합하는 것

  1) 세례는 완전한 단절입니다. 이 단절은 죽음처럼 종결적인 것입니다. 바울은 세례 의식을 예시로 사용하여 이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성도의 세례와 그리스도의 죽음을 같은 의미로 보고 있습니다. 바울은 성도의 세례와 그리스도의 죽음을 같은 의미로 보고 있습니다.
  세례는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우리 죄가 씻겼다는 상징인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12절)고 말합니다. 이것은 세례의 의미가 그리스도의 구속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2) '세례'는 매장과 부활을 상징합니다. 우리들이 '흑암의 권세에서' 풀려나와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진 극적인 변화를 여실히 드러내 줍니다. (골 1:13)
  분명히 이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키게 하는 것은 세례가 아닙니다. 세례는 이 변화를 상징해 줄 뿐이며, 실제의 변화는 그리스도안에서 일어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들이 죽고 또 살아나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발생되는 사건입니다. 새 생명은 세례의 물속에서 태어나지 않고,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와 연합됨으로써 탄생됩니다. 생명은 믿음 자체에 의해서 우리들에게 주어지지 않고 '그리스도에 의해서' 주어집니다. 믿음은 신자를 그리스도와 연합시키는 일을 합니다.

  2. 세례는 그리스도로 옷 입는 것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갈 3:27) 바울 사도는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주시는 은혜의 선물인 믿음을 받고 변화된 자를 '그리스도로 옷 입은 사람'이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화 된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로 옷 입은 사람은 외적인 모양과 내적인 심성이 온전히 새로워진 사람이며, 그리스도와 더불어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광과 반열에 서게 된 사람입니다.

  온전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친아들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그를 닮아가는 삶을 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로 옷 입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 그리스도와 연합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그가 주신 모든 말씀을 상고하며 그대로 지켜나감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의 의식에 참여한 자도 그리스도와 연합하지 않으면 거듭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말씀을 준행하며 그리스도의 삶과 일치되는 생활을 하기 위해 애쓰는 자만이 그의 안에 내주하시며 항상 동행하시는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로서 주앞에 합당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3. 세례는 구원의 표

  세례는 구원의 표징과 약속이 됩니다. "물은 예수그리스도의 부활 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벧전 3:21). 베드로는 세례를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는 방편이라고 말하지 아니하고 구원의 표라고 말합니다. 인간이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 입니다. 구원은 율법이나 세례, 또는 다른 의식이나 요식 행위를 통해서 얻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런즉 세례는 하나의 상징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례에 상징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즉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고 순종하겠다는 의미에서 받는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이미 구원이 보장되어 있는 것입니다. 세례가 인간 입장에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다는 결단의 표이지만, 하나님 편에서는 '나의 백성' 이라는 인침이요 증ㅍ인 것입니다. 베드로는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세례가 구원의 표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물은 육신에 묻은 더러운 것을 제할 수는 있지만 더러운 죄악을 깨끗케 하지는 못합니다. 따라서 세례는 정결함을 나타내는 상징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세례가 비록 죄악을 깨끗케 씻어낼 수는 없다 할지라도 양심을 깨끗케 하여 죄인이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즉 세례는 우리가 예전에 죄악 된 옛 생활에서 이미 죽었음을 상기시켜 줌으로써 자신을 계속 살피면서 거룩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아멘.

말씀일 : 2009년 3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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