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기억하시는 사람(사도행전 10:1~8)


  하나님은 경건생활을 잘하는 사람을 기억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사람이 되려면 경건생활을 잘해야 합니다.
  본문은 고넬료가 경건한 사람이라고 말씀합니다. 2절에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라고 했습니다. 경건한 신앙은 진실한 신앙, 두터운 신앙을 말합니다. 그럼 '경건한 사람'은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입니까?

  1.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
  고넬료는 '하나님을 경회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경외하다'는 말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공경한다느 말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고넬료는 이탈리아 군대의 백부장, 즉 로마인이었습니다. 그는 권력도 있고, 돈도 있고, 사회적인 지위도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유대인들이 믿는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 두려워 할 줄 알면 그 신앙은 된 신앙입니다. 하나님 두려운 줄 알면 하나님을 멀리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두려운 줄 알면 범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두려운 줄 알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대로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신앙이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으로부터 출발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한 사람들을 기억하시고 복을 주셨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경외하며 복을 받읍시다.

  2. 항상 기도하는 사람
  고넬료는 경건하여 항상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기도는 경건하게 사는데 필수과목 입니다. 기도 없이는 경건한 사람이 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시편 32편 6절에 "이로 인하여 무릇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타서 주께 기도할지라"고 했습니다. 경건한 사람은 식사하기 전에, 차를 운전하기 전에, 직장에 출근하고 퇴근하면서도, 잠자기 전과 일어나서도 기도합니다. 가장 경건한 사람은 새벽기도에 나와 기도합니다. 일년 365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변함없이 기도하는 성도들을 보면 목사인 저도 감탄합니다.
  고넬료는 항상 기도했을 뿐 아니라, 일정한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했던 사람입니다.(3절) 유대인들은 하루 세번씩 기도했는데, 고넬료는 이방인이었지만 그 좋은 점을 그대로 본받았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유대인들 처럼 그들의 장점을 이어받아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를 통하여 우리의 인격이 변화됩니다. 기도를 통하여 우리의 인생이 변화됩니다. 기도를 통하여 막힌 담이 무너집니다. 기도를 통하여 성령충만을 받습니다.
  철학자 '세네카'는 "그림의 떡은 떡이 아니요, 붙지 않은 불은 불이 아니며, 간절하지 않는 기도는 기도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기도하면 경건한 사람이 되지 말라 해도 경건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3. 이웃을 섬기는 사람
  2절에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라고 했습니다. 약1:27에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르 ㄹ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고 했습니다. 혼자서 거룩하다고 경건한 것이 아닙니다. 이웃과 함께 하지 않는 경건은 형식적인 경건입니다. 참 경건이 아닙니다.
  고넬료는 사람과 하나님이 인정해 줄 정도로 백성을 많이 구제하였습니다. 자기 백성도 아닌 다른 나라 백성, 사람취급도 하지 않던 식민지 사람들을 구제하였습니다.
  주님의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눅 12:33). 바울은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살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딤전 6:18~19)고 했습니다.
  경건한 고넬료는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사람이 되었고, 하나님의 사라자의 지시로 베드로를 만나 예수 믿고 구원받았습니다. 자신뿐만 아니라 온 집안 식구가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었고, 성령 충만을 받게 되었습니다. 나아가 고넬료를 통해서 이방선교의 문이 열리고 로마까지도 복음화가 되었습니다. 나 한사람의 진정한 경건이 세상을 변화 시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경건하십시다. 하나님 두려운 줄 알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며, 이웃과 함께 하며 사랑하십시다. 그래서 하나님을 만나 내가 변하고, 가정이 변하고, 교회가 변하고, 세상이 변하는 놀라운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말씀일 : 2009년 5월 24일 주일예배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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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가정(골로래서 3:18~21)


  바울은 본문에서 그리스도인들의 가정의 관계를 잘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며, 자녀는 부모에게 순종하고, 부모는 자녀를 격노케 하지 않으면 그 가정은 행복한 가정이 됩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행복한 가정을 이룹시다.
  가정은 사람을 사람 되게 만드는 공장입니다. 사회와의 관계를 배우는 곳이 가정입니다. 가정에서는 부모, 부부, 자녀 세가지 체계가 있습니다. 이 세가지 체계가 잘 조화를 이룰 때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세가지 체계중에서 그 중심은 부부입니다. 부부가 하나되어 부모를 공경해야 하고, 또한 부부가 하나 되어 자녀를 교육시켜야 합니다. 부부가 하나 되지 못한 효는 온전한 효가 될 수 없습니다. 부부유별, 부자유친이 부부유친, 부자유별로 바뀌어야 합니다. 부부가 친밀해야 가정이 행복해 집니다.
  유교의 효 사상은 부모중심의 효 사상이며, 기독교의 효 사상은 부부중심의 효 사상입니다. 하나님은 부부가 하나 되어 효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창2:24 말씀을 보면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부부가 하나 되어 자발적으로 효도해야 합니다. 바로 이런 부모님의 효를 보면서 자라는 자녀들이 진정한 부부의 사랑과 효도를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부모는 아이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아야 합니다. 아버지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선물은 어머니를 사랑하는 것이며, 반대로 어머니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선물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1. 아내들은 남편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아내들은 머리되는 남편에게 복종해야 합니다(18절). 바울은 그 이유를 크게 두 가지 이유로 설명합니다. 첫째는 남자가 먼저 창조되고 여자가 그 후에 창조되었다고 하는 창조의 질서 때문이며(딤전 2:13), 둘째는 남자의 머리 되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 복종하듯, 남편이 아내의 머리가 된다는 신성의 질서(고전11:3) 때문입니다. 여기서의 복종은 열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단순히 여자가 아닌 남자가 가정의 머리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2. 남편들은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남편들은 그리스도께서 몸 된 교회를 사랑하셨듯이 아내를 사랑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엡5:28~29).
  이것은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것 보다 더 포괄적이고 큰 임무에 속하는 일입니다. 즉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의 몸을 내어주셨듯이 남편들도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의 몸과 같이 사랑하고 돌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아내는 남편의 소유물도, 수하에 있는 사람도 아님을 남편들은 명심해야 합니다. '아내'는 '내 안에 있는 태양'이란 뜻입니다.

  3. 자녀는 부모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자녀들은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해야 합니다(20절). 구약성경은 자녀가 부모에 대해 불순종하는 것을 하나님께 대한 반역으로 규정하고 엄한 징벌을 명하고 있습니다(출21:17, 레20:9). 반면에 부모에게 순종한는 자는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20ㅣ12)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요셉과 그의 모친 마리에게 순종하심으로써(눅2:51) 친히 본을 보이셨습니다.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은 '주 안에게 기쁘게 하는 것' 이라고 본문은 말합니다. 이것은 자녀의 순종이 하나님께서 만드신 가정의 질서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다른 곳에서 자녀들이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이 '옳으니라.'(엡 6:1)고 했습니다.

  4. 부모는 자녀를 노엽게 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 21절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격노케 말지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아비들아'라고 한 것은 어머니들까지 포함하는 의미를 갖습니다(잠1:8). 그와 같이 부모들은 자녀들을 격노케 하거나 불합리한 요구를 함으로써 자녀들을 괴롭게 해서는 안 됩니다(엡6:4). 자녀들을 격노케 하면 그들은 낙심하게 되고 결국에는 잘못된 성장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들은 자녀들을 무조건 책망함으로써 격노케 하지 말고 '사랑의 훈련' (히12:7)과 함께 '주의 교양오가 훈계'(엡6:4)로 양육해야 할 것입니다. 아멘.

말씀일 : 2009년 5월 17일 주일예배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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